크루아상[Croissant]-프랑스
속을 잘라보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삼각형 모양을 한 크루아상은 기포가 많아 속이 비어 있어 가볍고, 버터를 넣어 지방분이 많은 빵이다. 크루아상은 일반적으로 프랑스 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기원은 헝가리다. 1770년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의해 프랑스로 전해지게 되었다.

ㅣ크루아상의 어원
크루아상(croissant)은 프랑스어로 “초승달(crescent)”을 의미한다. 초승달처럼 생긴 페이스트리의 모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오늘날 프랑스 식문화의 상징과도 같지만 크루아상의 기원은 정작 프랑스가 아닌 오스트리아나 헝가리로 유추되고 있다.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7세기말 오스트리아나 헝가리에서 오스만튀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빵이 프랑스에 전해져 발전한 것으로 본다. 특유의 초승달 모양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크루아상을 먹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크루아상이 지금의 형태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파리에서다. 밀가루 반죽에 버터를 듬뿍 넣은 후 밀대로 밀고 다시 접기를 반복하는 라미네이팅(laminating) 반죽 기법으로 켜켜이 층을 내 특유의 초승달 모양을 만들며, 겉은 파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초콜릿으로 속을 채우거나 아몬드와 크림을 곁들이는 등 다양한 레시피의 변형이 시도되고 있다.
ㅣ크루아상의 기원/유래
크루아상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들이 전해진다. 우선 크루아상이 17세기 오스트리아의 빈(Vienn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1683년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한 오스만 제국은 한밤중에 몰래 지하터널을 파서 빈으로 잠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음 날 먹을 빵을 굽기 위해 밤을 새워 일하던 제빵사 피터 벤더(Peter Wender)가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채고 오스트리아 군에 이 사실을 알린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고 이에 기여한 제빵사 피터 벤더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오스만 제국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으로 빵을 구울 특권을 그에게 부여하면서 크루아상이 탄생했다는 의견이다. 또는 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은 제빵사 피터 벤더가 이에 대한 답례와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오스만 제국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의 빵을 구운 것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한편 오스만 제국 군사들의 동향을 알아챈 공로를 인정받아 크루아상을 굽기 시작한 제빵사가 피터 벤더 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던 여러 제빵사라는 의견도 있고, 1686년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이든 초승달 모양의 빵을 먹는다는 것은 오스만 제국을 제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이 초승달 모양의 빵은 1774년 합스부르크(당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지배함)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에 전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따라 프랑스 왕궁으로 온 오스트리아 출신의 제빵사들이 초승달 모양의 빵을 프랑스 왕궁에 소개하였고,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후로 이 빵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크루아상이라 불리게 되었다.
또 다른 기원에 관한 설은 1839년경(혹은 1838년경) 파리의 ‘리슐리외 가(街) 92번지(92 rue de Richelieu)’에 비엔나 풍의 제과점(Boulangerie Viennoise)을 연 오스트리아의 포병장교 출신의 아우구스트 장(August Zang)이 소개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에는 약 13세기부터 만들어 먹던 것으로 추정되는 키펠(Kipferl)이라는 초승달 모양의 빵이 있었는데, 아우구스트 장은 자신의 제과점에서 이 빵을 만들어 팔았고, 파리의 다른 제과점에서 이를 모방하면서 오늘날의 크루아상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늘날의 크루아상과 같이 버터를 듬뿍 넣고 층층이 켜를 낸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만든 빵을 ‘비엔나 스타일의 페이스트리(viennoiserie pastry)’라 부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만 프랑스 제빵업계에 미친 아우구스트 장의 영향은 그가 훗날 빈의 일간지 『디 프레세(Die Presse)』를 창간하고 언론계의 거물로 성공하면서 그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교적 현실성이 있는 의견이다.
어느 설이 진실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오늘날 프랑스 식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크루아상의 기원은 프랑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에 전해진 초기의 초승달 모양의 빵은 오늘날 크루아상의 레시피와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으며, 버터를 듬뿍 넣은 반죽이 층층이 겹을 이루도록 굽는 크루아상의 레시피가 정착한 것은 약 1920년대로 파리의 제빵사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ㅣ크루아상의 종류
커피를 곁들인 크루아상은 프랑스인들의 전형적인 아침식사 메뉴이다. 버터를 넣어 프랑스 전통 레시피로 만든 크루아상은 ‘크루아상 오디네르(croissant ordinaire)’ 또는 ‘크루아상 오 뵈르(croissant au beurre)’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오리지널 레시피에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초승달 모양은 아니지만 크루아상과 같은 반죽을 네모난 모양으로 빚어 초콜릿으로 속을 채운 ‘팽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와 크루아상에 아몬드 페이스트(almond paste)를 채운 ‘크루아상 아망드(croissant amande)’가 있다. 이 외에도 크림과 얇게 자른 아몬드를 곁들이거나 커스타드(custard)와 마른 과일을 결들인 것, 또는 햄이나 치즈로 속을 채운 짭짤한 맛의 세이보리(savory) 버전도 있다.
ㅣ크루아상 먹는 방법
크루아상은 구운 즉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잘 구워진 크루아상은 겉은 파삭하고 잘 부서지나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버터를 듬뿍 넣은 반죽이 켜켜이 층을 이루는데, 일반적으로 크루아상에는 약 81개의 층이 나 있다. 크루아상은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버터, 잼, 마말레이드(marmalade)를 곁들이기도 하고, 반을 갈라 햄이나 치즈로 속을 채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ㅣ크루아상 금지령
2013년 8월 2일자 『타임』지 기사에 따르면, 반군이 점령한 시리아의 알레포(Aleppo) 지역에 위치한 이슬람 율법 위원회에서 시리아인들이 크루아상을 먹는 것을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시리아는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오늘날 프랑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크루아상을 금지시키는 것이 프랑스 제국주의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크루아상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 크루아상은 17세기에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튀르크제국에 맞선 유럽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빵으로, 이는 곧 이슬람의 패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크루아상 (세계 음식명 백과,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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